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텔레비전과 대상 의식에 대해 - 담양타로
 
산소명상
 
신청하기
 
자주 묻는 질문
 
책방 / / 2022. 12. 3. 23:59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텔레비전과 대상 의식에 대해

대상 의식과 공간 의식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물질적인 것과 해야 할 일들, 생각해야 할 것 등의 일들로 가득하다. 그러한 삶은 윈스턴 처칠이 "한 가지 망할 놈의 것 다음에 오는 또 다른 망할 놈의 것들."이라고 규정한 인류의 역사와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지러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한 생각이 지나가면 다음 생각이 연이어 밀려온다. 이것이 대상 의식의 차원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현실이다. 인간의 삶이 그토록 불균형 상태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의 행성을 제정신으로 도리고 인류가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대상 의식을 공간 의식으로 균형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공간 의식의 등장이 인류 진화의 다음 단계이다. 공간 의식은 사물을 의식하는 것-언제나 감각 지각, 생각, 감정의 순서로 진행되는-과 동시에 그 밑바탕에 알아차림의 흐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알아차림은 사물, 즉 대상을 의식할 뿐 아니라 자신이 의식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전면에서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그 배경에 내면의 깨어 있는 고요를 감지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이 차원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결코 자각하지 못한다. 나는 때로 그것을 가리켜 이런 식으로 말한다. "당신은 자신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가?" 공간 의식은 에고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일들, 물질주의와 물질성에 대한 의존으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 초월적이고 진정한 의미를 줄 수 있는 영적 차원이다. 어떤ㄷ 사건과 사람과 상황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때 진정한 원인은 그 사건과 사람과 상황 자체가 아니다. 오직 공간만이 줄 수 있는 진정한 시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신으 대상 의식에 갇혀 시간을 초월한 의식 그 자체인 내적 공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건 또한 지나가리라.'를 하나의 방향 표지판으로 사용하면 다시금 그 차원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 한 가지, 당신 안의 진리를 가리키는 표지판으로 당신의 문장이 있다. "나는 자신의 생각 때문에 결코 동요되지 않는다." 

 

생각 아래로의 추락, 생각 위로의 올라감 

몹시 피곤할 때 평소보다 더 평화롭고 덜 긴장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피곤함으로 인해 생각이 줄어들어 마음이 만든 문제 많은 자아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당신은 잠을 향해 움직여 가고 있는 것이다. 고통체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는다면 술과 특정한 약으로도 긴장이 풀리고 근심이 없어지며, 잠시 동안은 평소보다 더 생기가 넘쳐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지 모른다. 노래와 춤은 오랜 옛날부터 삶의 기쁨의 표현들이었다. 마음이라는 짐이 덜 무거워지기 때문에 당신은 '순수한 있음'의 기쁨을 잠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알코올이 영어로 '스피릿'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아마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의식이라는 큰 대가가 따라온다. 생각들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몇 잔이 더 거듭되면 식물계 영역으로 퇴보할 것이다. 공간 의식은 이러한 '몽롱해지는' 상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공간 의시고가 몽롱해지는 상태는 둘 다 생각을 초월한 상태이며, 이것이 그 둘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차이는 전자가 생각들 위로 올라가는 데 반해 후자는 생각들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쪽은 인간 의식 진화의 다음 단계이고, 다른 한쪽은 수억 년 전에 벗어난 단계로의 퇴보이다. 

 

텔레비전 키즈 만화, 영적 의식과의 연관성

텔레비전이 무의식에 미치는 최악의 영향 

텔레비전 시청은 전 세계 수억 명이 가장 좋아하는 여가 활동,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비활동이다. 60세가 될 때까지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생애의 15년을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며 보낸다. 다른 많른 나라에서도 그 수치는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시청이 긴장을 풀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기 자신을 더 관찰해 보면, 텔레비전 화면에 관심을 집중ㄹ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고 활동이 정지되며, 토크쇼와 게임 프로그램, 연속극뿐 아니라 광고까지 보는 시간에는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의 문제를 기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일시적으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보다 더 긴장이 풀리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텔레비전 시청이 내적 공간을 가져다주는가? 그럼으로써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당신의 마음은 오랜 시간 어떤 생각도 만들어 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사고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텔레비전 속의 집단 무의식과 연결되어 그 생각을 생각하고 있다. 생각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만 마음이 활동을 정지하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텔레비전 화면으로부터 생각과 이미지를 끊임없이 흡수하고 있다. 이것은 최면 상태와 다르지 않게, 넋을 잃은 상태에서의 수통적인 깨어 있음이다. 그래서 텔레비전이 '여론'조작에 이용되는 것이다. 광고업자뿐 아니라 정치인과 틀별한 목적을 가진 단체들은 텔레비전이 사람을 멍청하게 하는 수동 상태를 만들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때문에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당신에게 심으려고 하며 대부분은 성공한다. 따라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는 생각 위로 올라가지 않으며 생각 아래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이 점에서 텔레비전은 술이나 마약과 같은 류이다. 어느 정도는 마음에서 해방시켜 주지만 의식의 상실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마약처럼 강한 중독성이 있다. 텔레비전을 끄려고 리모컨에 손을 뻗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곳저곳 채널을 돌리고 있다. 30분 뒤에도 1시간 뒤에도 당신은 여전히 채널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손가락은 전원 끄는 버튼만은 누를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개 텔레비전을 계속 보는 것은 재미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흥미 있는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텔레비전에 중독되면 프로그램이 별 것 아니고 무의미한 내용일수록 점점 의존이 심해진다. 흥미롭고 생각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당신의 마음은 스스로 그 주제에 대해 생각을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의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텔레비전이 야기하는 최면 상태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당신의 주의력은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들에 완전히 포로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선택하라 

어느 정도 깊이 있는 프로그램은 텔레비전 매체가 주는 최면과 마비 효과를 없애 준다. 사람들의 삶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고 열린 마음과 깨인 의식을 심어 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특별한 내용 없는 코미디 프로그램조차 때로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과 에고를 풍자함으로써 애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영적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프로그램은 어떤 것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가볍게 삶에 접근하라고 가르쳐 주며, 무엇보다도 웃음을 선물한다. 웃음은 사람을 치유하고 자유롭게 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지금도완전히 에고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이 조종하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를 잠자게 하는 것, 즉 무의식 상태로 만들어 지배하는 것이 텔레비전의 숨은 목표이다. 그러나 텔레비전 매체는 아직도 거의 탐구되지 않은 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보면 무의식적이 될 뿐 아니라 수동적이고 에너지가 고갈된다. 그러므로 무작위적으로 시청하는 대신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기 몸 안의 생명력을 느끼는 것이 좋다. 혹은 때때로 자신의 호흡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각이 완전히 텔레비전에 점령되지 않도록 때때로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어야 한다. 청각이 압도되지 않도록 음량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하지 않는다. 상업 광고 시간에는 음을 소거한다. 또한 텔레비전을 끄자마자 잠들지 않는 것이 좋다. 켜 놓은 채 자는 것은 더 나쁘다.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