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척은 지겨워, 쓰레기 가슴과 차안대 - 담양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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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 / 2022. 11. 22. 21:44

착한 척은 지겨워, 쓰레기 가슴과 차안대

아픔만 있는 세상

아픔이 행동의 동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픔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봤을 때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그들의 아픔이 아팠던 사람들, 이 두 집단이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때, 또 공통으로 감각한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연대할 때 그 결과로서 작고 유의미한 진전들이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변화들도 그런 협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모든 사회 변화가 지금도 아픔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면, 지금 온 세상이 아픔의 소리로 진동하는데 행동은 눈 씻고 찾아봐도 희소한 이 엄청난 불균형!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행동이 없는 이유 

관성은 무행동이다. 변화를 일구는 전환적, 저항적 행동이 행동이다. 왜 아픔은 더 이상 행동을 유발하지 못할까? 아픔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무엇이 가로막고 있나?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설을 검토하던 중 나는 심리 해부학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학문은 사람들이 심리적 실체로 여기는 존재들의 해부학적 특질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분석 철학에서 유행하는 개념 엔지니어링과 혼동해선 안 된다. 데카르트가 영혼의 물리적 위치를 찾으러 송과선이라는 기관에 주목했다면, 심리 해부학은 정신과 물질의 접경지대에서 신체 없는 기관들을 가시화하는 작업에 초첨을 맞춘다. 

 

쓰레기 가슴이라고 말하는 심리적 기관

유사 심장, 쓰레기 가슴 

금세기 심리 해부학은 '아픈 마음'을 호소한 피실험자 집단에 관한 데이터가 대거 축적되면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풍부한 임상 실험을 바탕으로 일군 가장 대표적인 성취는, 두 가지 핵심 기관의 존재를 밝혀낸 것이다. 첫째는, 우리가 통상 가슴이라고 느끼는 부위 즉 심장 위에 기생하는 수상한 기관이다. 이 '유사 심장'이 활성화될 때마다 피실험자(이하 숙주)들은 가벼운 흉부 통증, 눈과 코의 분비물 분비, 심부 온도 상승을 경험한다. 일부는 도파민 분비 후 '단서-충동-보상' 사이클이 반복되는 중독 증세도 보인다. 숙주들은 이 경험을 묘사할 때 '뜨겁다, 아프다, 아리다, 짠하다'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며, 그 기관을 실제로 봤다고 굳게 믿지만 막상 그려 보라고 시키면 붉은 계열의 추상적인 사과 형상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숙주들의 믿음과는 달리 이 기관이 인체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은 확인된 바 없다. 독자적 기능은 전무하고 숙주의 심장에 기생해 그 기능을 심각히 저해하며, 죽이지 않는 상태에서 최대치로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이 이관이 한번 작동할 때마다 다량의 행동 저해 호르몬이 분비된다. 행동 자극 세포가 공격을 받고 무력화되면 찌꺼기로 분쇄돼 혈관 내부에 쌓인다. 이때 쾌락 중추가 자극돼 숙주는 '긍정적 행동을 했다'고 착각하는데, 이것이 반복되면 역치가 낮아진다. 극히 작은 외부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고 휘발하며, 영양분은 고사하고 찌꺼기만 양산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책 없이 소모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기관에 대한 숙주들의 집착은 대단하다. 숙주-기생 관계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뇌 하이재킹' 현상이다. 이 기관이 발견되는 숙주들에 대한 인구 통계학적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60퍼센트 이상이 중산층 이상, 소셜 미디어 사용 빈도 상위 30퍼센트(하루 평균 4시간 이상)에 해당하는 계층이다. 유력인물에 대한 반응도와 자기 투영 경향이 높은 점도 일치한다. 뭐라고 명명할 것인가. 가슴 찌꺼기 저장소? 악성 가슴? 기생 가슴? 잉여 가슴? 가슴 쓰레기? 다양한 후보들의 난립 끝에 쓰레기가슴으로 낙점되었다. 쓰레기로 이뤄졌고, 쓰레기 역할을 하며,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마땅한 이 기관의 생애 주기를 감안하면 이보다 적확한 이름도 없기에 발견자들 사이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차안대

두 번째 기관은 차안대이다. 차안대는 원래 경주마가 앞만 보도록 강제하는 눈가리개 또는 눈 가면을 지칭하는데, 주로 양측 관자놀이를 감싸는 날개 형태로 발견되고 시간이 지나면 지지 골격이 탈락하면서 껍데기만 남는다. 차안대의 알려진 기능은 시야를 가리거나 좁히는 것 뿐이다. 쓰레기가슴과는 달리, 피실험군의 1퍼센트만 차안대의 존재를 자각하고 있었고 형태를 시각적으로 묘사하지도 못했다. 차안대는 청력과 시력을 감퇴시키고 외부 음성/시각 정보를 선택적으로 차단한다. 보는 대상 이외의 주변 시각을 노이즈로 인식해 제거하므로 지향성 시각이 강화된다. 차단벽 안으로 유입된 정보는 내부 공전을 통해 증폭되고 확증편향을 촉진한다. 동반되는 급격한 뇌 기능 저하는 모든 연령대의 숙주체게 나타난다. 이들에게 차안대의 건강 리스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원할 경우 무료 절제 수술을 제안하는 실험이 행해졌다. 흥미롭게도 99퍼센트는 제거를 거부했고, 수술에 응한 소수 집단에서도 아무런 인지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다. 즉, 차안대가 없어져도 시야는 확대되지 않았다. 수족 절단 환자들이 감각하는 절단부 환각 같은 원리일까? 차안대를 장기간 장착하면 봐도 못 보는 무시 능력이 계발되는 걸까? 차안대의 결정적 역할은 숙주 본인의 시야도 좁히지만 상대방의 시야도 나와 같을 거라고 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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