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의 역사, 동서양 각 나라에서의 의미 - 담양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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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 / 2022. 11. 2. 19:08

우유의 역사, 동서양 각 나라에서의 의미

낙타 젖으로 생활한 베두인족

베두인족은 수 세기 동안 사막의 유목민으로 살았다. '베두인'이라는 말 자체가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종교를 처음 받아들인 여러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도 베두인족은 아랍 세계에서 대단히 존경받는 독실한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스크를 짓지 않았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베두인족은 그 무엇도 짓지 않았다. 그들은 탁 트인 사막에서 메카가 있는 쪽을 향해 기도를 올렸고, 씻는 것과 관련한 종교의례에는 물 대신 모래를 사용했다. 베두인족의 식단은 거의 전적으로 우유로만 구성될 때가 많았다. 그 우유는 가장 귀중한 재산인 낙타에게서 얻었다. 그들은 낙타와 함께 살고, 낙타털로 만든 텐트를 쳤으며, 낙타 옆에서 잠들고, 낙타를 타고 이동하며, 낙타의 젖을 짠다. 낙타가 찾아 먹는 먹이는 젖을 만들기에 이상적이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낙타가 끝이 뾰족뾰족하고 염분기 있는 덤불, 더 정확하게는 갯능쟁이를 먹으면-갯능쟁이속에 속하는 식물들은 토양에서 염분을 흡수한다-젖에서 아주 짠맛이 난다. 하지만 베두인족은 우유가 짜도 아무렇게 않게 마시는데, 낙타에게는 소금기 있는 식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제품과 네덜란드

특히 네덜란드인들은 우유, 치즈, 버터를 끊임없이 먹어대는 아둔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로 찍혔는데, 심지어 네덜란드와 인접한 벨기에의 플랑드르 사람들조차 그들을 '케스코픈', 즉 '치즈 대가리들'이라고 부르며 비웃었다. 16세기 막강한 군사력을 키워가고 있던 네덜란드 해군은 수병 한 사람당 매주 치즈 반 파운드, 버터 반 파운드, 빵 5파운드를 지급했다. 치즈와 버터를 넉넉하게 공급받는 건 모든 네덜란드인의 권리였다. 네덜란드는 13세기에 치즈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16세기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칸디나비아, 스페인, 포르투갈에 하우다 치즈를 수출할 정도로 생산량이 많았다. 

 

유방암 치료를 위한 우유 물 

18세기와 19세기에는 '우유 물'이 흔한 치료제로 쓰였다. 이는 질병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넣고 물로 희석한 우유를 일컫는 것이었다. 엘리자 스미스가 우유 물 레시피 두개를 소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다음과 같다. 새로 짠 우유 약 6.84리터, 이질풀(제라늄) 4줌, 쥐며느리 400마리를 준비한다. 이걸 차가운 증류기로 약한 불에서 증류한다. 홍두(씨앗에 독성 성분이 있는 열대식 물) 28.35그램과 하얀 얼음 설탕(결정이 크고 순도가 높은 설탕) 약 14.175그램을 곱게 가루 내어 잘 섞는다. 우유 약 150밀리리터에 이 가루 3.54375 그램을 아침, 정오, 저녁에 한 번씩 3~4개월 동안 먹는다. 이건 효과가 탁월한 처방이다. 

 

 

일품 야크 요거트 

티베트 유목민은 '참바'를 먹었는데, 이게 그들의 주식이었다. 참바를 만드려면 치즈를 만드는 첫 단계에서 나오는 신선한 커드인 '추라'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여행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커드를 원했기 때문에 추라를 먼저 햇볕에 말려서 갈색이 나는 바삭한 작은 알갱이 형태로 만들었다.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몽골군이 치즈를 먹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들이 먹은 건 서양식 치즈가 아니었다. 말 안장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영양 보충 간식으로 먹는, 추라와 비슷한 말린 커드였다. 야크 젖으로 만드는 최고의 음식은 야크 요거트이다. 지방 함량이 높아 아주 진하고 맛이 좋으며 우유 지방이 굳어 생긴 얇은 층이 맨 위를 덮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이 요거트를 토핑 없이 플레인으로만 먹는다. 진한 야크 요거트를 먹고 나면 소젖으로 만든 요거트는 실망스럽게 느껴지는데, 사업가들은 이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야크 요거트는 지금 중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피라고 생각했던 우유 

우유는 피와 마찬가지로 액체였고, 많은 사람이 우유를 피라고 믿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붉은 고기와 함께 유제품 섭취를 금했다. 종교축일에는 모든 유제품을 먹을 수 없었다. 7세기까지 이런 날이 꾸준히 늘었고 중세 이래로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지금은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과 부활절 전 40일이 이런 날에 속한다. 전부 합하면 일 년의 절반 이상 붉은 고기와 유제품을 못 먹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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