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서 영혼을 캐낸 미켈란젤로의 시간 해석 - 담양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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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 / 2022. 11. 6. 14:37

돌에서 영혼을 캐낸 미켈란젤로의 시간 해석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한 미켈란젤로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는 묘지 조각을 주문받았습니다. 새로 교황에 오른 레오 10세의 부탁이었습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서 나온 교황 레오 10세는 가문의 수호성자인 성 로렌초 교회에 메디치의 영광을 오래도록 기념할 대리석 묘지를 짓고 싶어했습니다. 줄리아노와 로렌초를 마지막으로 메디치 가문의 핏줄이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으니 당연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미켈란젤로의 머리에는 흰 서리가 하얗게 덮였습니다. 수염도 희끗희끗해서 마흔다섯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메디치 묘지 조각을 구성하던 미켈란젤로는 주검을 가두는 석관 위에 시간의 우의를 올려 두기로 했습니다. 석관이 인간의 덧없는 생명을 의미한다면, 그 위에 올라앉은 밤과 낮, 새벽과 황혼의 시간들은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시간의 절대적인 권위를 뜻합니다. 시간의 우의를 새긴 조각 위에다 다시 줄리아노와 로렌초가 앉아 있는 모습을 올려 두었습니다. 그건 생전의 모습이나 용모하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몸은 생명의 기운을 흩뜨리고 사라졌으나, 그들이 남긴 영웅적 업적과 영광스런 치적은 시간을 넘어서서 영구히 꺼지지 않고 빛나기 때문입니다. 묘지 조각을 아래서부터 위로 읽으면 '육신의 죽음'-'죽음을 넘어서는 시간'-'시간을 뛰어넘는 영웅적 덕목'이 차례대로 배치된 셈입니다. 

 

미완성으로 남겨둔 이유

미켈란젤로는 시간의 우의들이니만큼 돌과 더불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그 형태가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되풀이하는 게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의 혼돈과 조형의 질서가 서로 긴밀하게 밀착했습니다. 비록 완전하게 마무리하지 않은 미완성이지만 보는 사람의 상상력과 안목에 따라서 얼마든지 조각가의 본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두껍고 어두운 밤의 장막 속에서 크게 몸을 뒤척이며 꿈 속을 헤매는 밤의 우의는 여인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밤을 '라 노테'라고 여성형으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대신 낮의 우의 '일 조르노'는 무거운 눈꺼풀을 꿈틀대며 잠에서 막 깨어나 아침 햇살을 넌지시 바라보는 남성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밤의 우의는 머리에 달과 별이 붙은 관을 썼습니다. 왼발은 잠을 부르는 양귀비꽃을 한 묶음 밟고 있습니다. 올빼미 한 마리가 눈을 끔뻑이면서 파수를 보고 있습니다. 왼팔 아래에서는 기묘한 모습의 가면이 눈을 부라립니다. 원래 생쥐를 하나 새겨 두었었는데,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가면으로 대신했다고 합니다. 생쥐는 뭐든 쏠고 갈아서 먹어치우는 습관이 있습니다. 시간의 신도 제가 낳은 자식들을 모두 삼켜 버리니 생쥐와 똑같다고 생각해서 그랬는데, 까탈스런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슬렸던 것입니다. 

 

시간을 해석하는 네 가지 측면

처음으로 시간을 네 명의 우의로 해석하다 

이 두 우의는 마치 제 등뼈를 못살게 굴려는 듯이 심하게 몸을 뒤틀었습니다. 만약 그들의 무릎을 잡고 가만히 밀거나 잡아당기면 뒤뚱 하고 굴러떨어질 것 같습니다. 시간을 나타내는 두 남녀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서 소용돌이치는 움직임의 자세가 밤에서 낮으로, 낮에서 밤으로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미켈란젤로는 두 남녀의 뒤틀린 자세를 통해서 밤과 낮을 묶어 두었습니다. 시간의 연속성을 이런 식으로 풀어 낸 것입니다. 시간의 네 명의 우의로 풀어서 해석한 건 미켈란젤로가 처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큰 낫을 휘두르며 등장하기 일쑤였습니다. 오랜 시간만큼 하얗게 나이를 먹은 대머리 할아버지가 크로노스입니다. 그가 휘두르는 큰 낫은 자신이 낸 모든 것을 다시 거두어 가는 무참한 속성을 뜻합니다. 간혹 모래시계를 옆구리에 차거나 어깨에 올려 두는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하루의 네 귀퉁이를 떠받치는 네 경과를 제각기 회전축으로 삼아 시간의 도도한 흐름을 연결했습니다. 여성과 남성, 빛과 어둠, 부드러움과 단단함, 움직임과 멈춤, 앎과 모름 사이의 긴장이 등을 돌리며 반목하고, 서로 정겹게 엉켜 들면서 화해하는 부조화의 조화 가운데 시간 본성을, 그리고 시간과 싸우는 예술의 영혼을 조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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